토머스 소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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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경제학자이다.
2. 생애[편집]
노스 캐롤라이나의 개스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 직전에 아버지가 사망했고, 이미 아이가 넷이 있던 어머니는 이모 할머니와 사촌들에게 토머스를 입양시켰다. 샬럿으로 옮겨 가 그곳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엔 백인을 거의 보지 못 했고, 토머스는 자서전에서 말하길 금발(blond)이 머리색을 뜻하는 건지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9살에는 뉴욕 할렘으로 이사갔다.[1] 이후 명문고인 스타이브슨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재정 문제로 자퇴하였다. 토머스는 공장에서 일했고 배달부로 근무하였다. 1948년에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트라이아웃을 받기도 했다.[2]
1951년에 미 해병대에 징병되어 사진병으로 근무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였다.
1953년, 전역 후에 하워드 대학교에 야간 코스에 진학했다. 학교에서의 우수한 성적과 성실한 학업태도를 눈여겨 본 두명의 교수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958년에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학사를 수석[3] 보다 한단계 아래인 최우수[4] 로 졸업했고 다음해인 1959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그리고 38세가 된 1968년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부터 코넬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했다.
3. 연구[편집]
4. 성향[편집]
20대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한다. 1961년부터 1962년까지 1년간 노동부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푸에르토리코의 설탕 제조 노동자들의 실업률과 최저임금법의 관계를 조사한 후부터 시장주의자로 바뀌었다.
현재에 토머스 소웰은 미국 보수층의 자유지상주의를 대변하는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정치적으로도 강경 보수 성향이다. 2016년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였다. 원래는 테드 크루즈를 지지하였으나,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하자 그를 지지하였다.
2020년에는 민주당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급진 좌파들에 의해 미국의 의회와 백악관이 지배되어,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처럼 되돌릴 수 없을 수 있다고 표현하였다. #
5. 여담[편집]
1964년 앨머 파와 결혼했으나 1975년 이혼하였다. 이후 1981년에 매리 애시와 재혼하였다.
자녀 둘이 있다.
한국에서는 토머스 '소웰'로 읽고 쓰지만 실제 이름은 토머스 '소울'(soul)로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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